수상이력
정채남 선생은 남편 백종기 씨와 함께 40여 년 동안 내서 민속문화예술인 ‘내서 초군 놀이’와 ‘숯꾼놀이’, ‘숯 일소리’, ‘들일 소리’를 발굴해 보존하는데 일생을 거의 바쳐 온 인물로 발굴과 보존, 전승을 위해 노력해왔다.
'광려산 숯일소리'는 경남 무형문화재 제43호로 2017년 12월 21일에 지정 등록되었으며
광려산 숯일소리 보존회는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옥정 1길 9-19에 소재하고 있다.
현재에도 내서읍 신감리 산 179번지에 위치한 신라 고찰 광산사 인근에 숯 굴터가 남아 있으며 역사적으로는
고려시대에도 내서 광려산 중턱에 6개의 숯굴이 산재해 있었다고 전해진다.
광려산 숯일소리는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신감리 마을 일대에서 전승된 숯일노래로,
일제 강점기를 거쳐 1970년대까지 불러온 노동요를 말한다.
숯을 만들면서 부르는 노동요로 노래의 전개 순서를 보면 숯을 생산하는 작업의 과정을 알 수 있는데
숯굴터신풀이-어산영 소리-목도소리-숯가마 등치는 소리-숯풍년 소리 순서로 진행된다.
여러 장르의 노래가 섞여있는데 의식을 거행할 때는 의식요, 휴식을 취할 때는 유희요, 노동을 할 때는 노동요가 불려졌다.
노래는 일에 참여하는 사람이 공동작업을 할 때는 단체요, 개별적으로, 작업할 때는 개별요라 부르는 등 다양한 방식의 가창과 장르의 노래가 함께 공존하는 것이 숯일소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현재 광려산 숯일은 사라졌지만 숯일에 종사했던 박치동(1933~)과 이인규(1935~2014)의 고증을 통해 숯일소리가 복원되었다.
2021.06.14(월)
제6회 광려산 숯일소리 전승공개 공연행사와 제17회 광려산 선령제향 행사,
제26회 세시풍속 단오절 행사가 광려산 숯일소리 보존회 전수관에서 예정되어 있다.
Q. 소리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유년시절부터 주변에서 소리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다들 재미있어하고 즐겁게 즐기며 하는 분위기였다.
주로 구전민요를 배운다기보다 같이 살며 즐겁게 즐기다 보니 내 소리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명창이라 불리던 고종사촌 황옥규 씨와 황옥주 씨로부터 민요와 일소리를 배웠고 성인이 되어서도 내서지역에서 구전되던 민요를 채집하여 불렀다.
Q. 숯 일소리는 구전으로 내려오던 민요를 채록해서 만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숯 일소리를 어떻게 완성하시게 되었나요?
34여 년간 수집해서 만들었다. 여러 사람들의 소리를 모아 만들었고
직접 박치동 씨와 이인규 씨를 만나 고증을 통해 숯 일소리를 복원하였다.
10곡으로 알려져 있는데 6 소리, 마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곡으로 치면(따지자면) 엄청 많다
여섯 소리를 전수하고 있다.
Q. 채록하고 문화재로 인정받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셨는데 힘드셨던 점은 없으셨나요?
힘들었다는 것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3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발굴해서 이러한 많은 소리들이 묻혀있었다는 것,
이러한 많은 소리들이 묻혀있었다는 걸 발굴해서 알리기까지 엄청난 고초가 있었다.
들일 소리 같은 경우에는 들에서 진행하는 것이라 괜찮지만 숯일소리 같은 경우에는
산에서 다 같이 합을 맞춰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다들 힘들어했다.
인정받고 나서 말할 수 없는 벅참과 감정을 느꼈다.
우리가 해냈다는 뿌듯함과 우리도 시련 속에서도 해낼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지역 문화재로써 내서와 창원에서 인정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Q. 미래에 대한 고민은 없으신가요?
내서 민속문화예술인 ‘내서 초군 놀이’와 ‘숯꾼놀이’, ‘숯 일소리’, ‘들일 소리’가 있는데
초군 놀이(풀 베는 농군들의 소리)가 발전되어서 들일 소리(들에서 하는 모심기 소리)가 된 거다.
초군 놀이, 들일 소리부터 시작했다 초군 놀이, 들일 소리, 숯꾼놀이 등 이 지역을 위해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서 하였고 다른 것들도 인정받고 알리고 싶다. 숯일소리는 현재까지 전국에서 최초로 채록된 유일본이다.
아직까지 문화재 인정받은 지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현재 보유자는 나 하나뿐이라 힘이 든다.
3년이 지나면 이수자를 신청할 수 있는데 하고자 하는 사람도 없고 힘이 들어서 금방 포기하기 마련이다.
지금은 백성흠 씨나 박쌍규 씨가 같이 활동하며 후계자로서 역할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며
다 같이 전승에 힘쓰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 문화재로써 앞으로 잘 보존이 되어서 대대로 펼쳐졌으면 좋겠다.
Q. 예술계통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예술을 그만두는 청년들이 많아서 아쉬울 뿐이다.
나는 소리에만 매진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일과 소리를 함께 병행하다 보니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시기가 지나면 다시 하기도 힘드니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젊은 예술인들을 잘 심어서 키워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의 전통의 소리가 이어져 오는 데는 많은 시간과 관련자들의 노력과 땀방울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