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계간 [문학과경계] 신인상 공모 당선작
타일벽 / 주강홍
모서리와 모서리가 만났다
반듯한 네 귀들이 날카롭게 모진 눈인사를 나누고
같은 방향 바라보며 살아가라는 고무망치의 등 두들김에도
끝내 흰 금을 긋고 서로의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붙박인 모서리 단단히 잡고 살아야 하는 세월
화목이란 말은 그저 교과서에나 살아 있는 법
모와 모가 만나고 선과 선이 바르게만 살아 있어
어디 한구석 넘나들 수 있는 인정은 없었다
이가 딱 맞다
유액을 바르고 잉걸불에 몸 담그면서
결코 같지 않으면서 같아야 하는 서로의 얼굴이 건조하다
촉수가 낮은 형광등 불빛에 몸 낮추고
시린 손등 어둠 언저리에 말아보지만
쉬이 말리지 않는 것은 경계의 흰 선이 너무 선명하기 때문일까
낙수의 파형(波形)만 공간 가득하다
물살이 흔들릴 때마다
욕실 속은 실금 허무는 소리를 낸다
욕실을 지배하는 건
모서리들끼리 이가 모두 딱 맞는 타일 벽이 아니었다
타일 벽을 쓴 사람은 건설회사 사장입니다. 그래서 이 분이 쓴 시는 다 현장성이 두드러집니다. 타일을 의인화한 이 시는 공사현장에서 펼치는 인생론입니다. 욕실 타일 벽 공사를 하면서 시인이 깨달은 것은 고무망치의 두들김에도 "흰 금을 긋고 서로의 경계를 늦추지 않는" 타일의 저항과 "붙박인 모서리 단단히 잡고 살아야 하는 세월"의 의미입니다. 공사현장에서 타일 벽은 이가 딱 맞아야 하지만 우리 인생이란 것이 어디 그렇습니까. 때로는 언밸런스이고 때로는 뒤죽박죽이고 때로는 오리무중이지요. 하지만 타일 벽이 그래서는 안 되지요. 규칙과 규율을, 감독과 관리의 세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시는 제4연에 가서 역전을 시도합니다.
시인동네 시인선 045_주강홍 시집 『망치가 못을 그리워할 때』
삶의 치열한 현장에서 길어올린 성찰의 언어
〈시인동네 시인선〉 045. “작품의 스케일이 크고 주제의식이 비교적 명확하다. 시마다 구성력이 뛰어나고 시적 긴장감도 시종일관 잃지 않고 있는 것이 미더움을 갖게 한다.”라는 평을 받으며 등단한 주강홍 시인이 등단 12년 만에 펴내는 첫 시집.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생활현장과 인간관계와 종교적 초월까지, 그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인생의 단면을 성찰의 언어로 녹여낸다. 자기 체험의 진실성을 마디마디 생생한 시의 언어로 체화하여 대나무처럼 단단하고 곧은 시의 숲을 일구어낸다. 사람 냄새와 왁자지껄한 생활의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그 숲에 든 사람들은 마치 삼림욕을 하는 것처럼 가슴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시심을 활짝 열어젖히게 된다. 나와 다르지 않은 한 시인의 삶을 엿보는 이 산책길은 우리에게 삶의 현장 모서리마다 끼어 있는 신비로움을 전해주며, 우리가 살면서 잊고 살았던 것들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제6회 형평지역문학상 주강홍 <<목수들의 싸움수칙>> (2019년)
일상과 체험의 호흡으로 만든 詩의 경첩
주강홍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첫 시집 『망치가 못을 그리워할 때』를 통해 생활현장과 인간관계까지, 인생의 단면을 성찰의 언어로 녹여내며 독자들의 호응을 얻어온 주강홍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목수들의 싸움 수칙』이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서도 역시 ‘체험’적인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힘줄을 쥐고 뛰는 듯한 언어들과 이미지가 시인이 살아내고 있는 삶을 보다 뚜렷하고 명징하게 드러낸다. 또한, 일상에 놓인 사물들에게 발언권을 주면서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하고 있는 것이 이번 시집의 큰 특징이다. 시인은 중계자로서, 사물들의 낯설고 새로운 언어를 세상에 송출하고 있다.
심사평
주강홍 시인의 <<목수들의 싸움수칙>>을 형평지역문학상의 수상작으로 선정한 까닭은 그 시적 탁월함과 결기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다른 다섯 시집들에 대한 예의와 존경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우연찮게도 주강홍시인은 심사위원들의 수고를 대신하여 이에 대해 자신의 시에 다음
과 같이 미리 적어 두었다.:모든 슬픔이 한가지로 시작됨을 알게 되는 것/거기에 다 모여서
/더 슬퍼질 수 없는 것/낮아질 수 없는 바닥에서 /서로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슬픔은 더 낮아질 수 없는 것“/채상우 시인
백인덕 시인
“주강홍 시인은 여전히 치열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고 말하며 “‘시라는 경첩’을 달아 시인 자신의 세계를, 아니 벽을 많은 문으로 열리거나 닫힐 수 있게 만드는 것만큼 우리 시단에도 현장으로 향하는 단단하고 아름다운 ‘문’을 계속 달아”줄 것을 당부한다. 이번 시집은 벽처럼 단단하던 일상에 경첩을 다는 방식의 시(詩)로 하여금, 독자들을 새로이 환기시키고, 시적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승하 시인(중앙대교수)
-생활현장과 인간관계와 종교적 초월까지, 그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인생 단면이 시인의 성찰의 언어들 속에 녹아 있었다. 시심을 열어둔 사람이라면 나이를 먹는 것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 마디마디를 생생한 시의 언어로 체화하며 대나무처럼 단단하고 곧게 성숙해가는 시들이 아름답다. 사람냄새와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시편들에 공감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오민석평론가(단국대교수) / 중앙일보 2017년6월
-주강홍의 시 용접에 대해 평설
사람도 건축물도 심지어 음식까지도 이질적인 것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식물은 흙과 "용접"되어 있고, 바다는 땅과 붙어 있다.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그 모든 관계에 태초의 용접이 이루어질 때,
한 삶에 다른 삶이 이식될 때,"감당하지 못하는 뜨거움"과 "처절한 비명"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용접될 때,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있었던가.
고통을 경유해 서로 다른 것이 연결됐을 때, 막혔던 것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이질"은 "동질"이 되고 "끊어진 한쪽"은 나의 한쪽이 된다.
박완호시인/시산맥.여름호
-주강홍시인의 모래시계 시평-
그의 시에서 한 알의 모래가 가는 곳은 신의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서쪽이다. 그에게 있어 사막은 고통 가득한 일상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아무것도 함부로 허용되지 못하는, 현실 너머의 고적하고도 성스러운 세계이다. 그의 ‘모래시계’는 “한 알의 모래인 세계가/ 무수히 많은 한 알의 모래들을 받아내는 참혹과 맞딱뜨리”거나 한 알의 시간이 빠져나갈 때마다 “일 초, 일 초, 일초/ 시름시름 앓는” 곳이 아니라, “수시로 거친 모래 결이/ 신의 방향으로 날을 세우고/ 눈만 남긴 검은 옷의 여인의 기도가/ 울음의 날에 베이는 시간” 속에서 “신이 스스로 기울기를 새기고 지우”는 “단도(短刀) 같은 용서만 있는” 곳이다. ‘단도 같은 용서’ 앞에서 ‘울음의 날’에 베이는 기도의 시간은 낮게 비워둔 공간인 그곳에 끝없이 쌓이고 내려앉지만 스스로 기울기를 새기고 지우는 신에게로 향하는 길은 지평선을 부르는 여우의 긴 울음소리만큼이나 멀기만 하다. 그러나 그는 태양을 따라 계속해서 서쪽으로 가야만 한다. 그가 가고 있는 서쪽의 맞은편이기도 한 이곳은 신의 소리에서 멀어진 곳이며, 성스럽고 고적한 세계와는 다른 속성을 지닌 세속의 공간이다.
시인 주강홍 Blog : https://blog.daum.net/bai0053/
경남일보 주강홍의 경일시단 :
http://www.gnnews.co.kr/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59&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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