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 대한 평설
강경주 시인의 작품을 보면, 슬쩍 눙치면서 읽는 이를 웃게 만드는 시가 꽤 많다. 모진 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따뜻한 햇볕은 갈등과 긴장의 갑옷을 벗어던지고 무장해제하게 만든다. 웃음이 자아내는 화해로운 세상을 그의 시에서는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세상은 강경하고 안하무인이면서 맹렬하고 요령부득이다. 그런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더욱 강고하게 자신의 요새 안에서 세상과 사람들에게 틈입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럼으로 하여 세상은 더욱 고해(苦海)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런 고해의 예리한 철조망과 가시덤불을 걷어내고 궁극의 세계, 열반과 해탈의 꽃밭으로 나가려는 몸짓은 시인말의 질곡에 빠지고 번뇌의 틀 안에 갇혀 살지만 사람은 지혜의 빛으로 세상을 읽으며 웃음과 희망을 찾아 나선다.
-그리하여 해탈을 꿈꾼다. 그 출발과 여정의 모습들을 강경주 시인은 다양한 작품에서 구현하고 있다. 그가 이르렀거나 이르고자 한 구경의 경지에 대해 답변을 찾는 일은 그의 시를 읽는 모든 사람들의 몫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짚어보는 모습도 결국은 내 자신의 거울로 들여다 본 나의 얼굴일 것이다.의 시가 보여줄 또 다른 지평이 될 것이다.
-임종욱, '默溪' 해설 한시연구가, 평론가, 소설가 2015.05
강경주 시인의 시집 '노모의 설법'에서 노모의 목소리를 빌려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자신이 아닌 타자의 목소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하나의 목소리(톤)로 삶을 재구성할 수 없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자, 타자의 진실과 가능 세계에 접근하려는 윤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처럼 타자의 진실에 접근하려는 시인의 태도는, 세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관망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와, 나의 ‘고집스런’ 동일성을 포기하겠다는 겸손에서 출발한다. 이에 따라 시인에게 시간은, 단순히 주어진 것이나 흐르는 것이 아니라, 도래하는 시간이자 남겨진 시간이다. 그것은 노모의 삶을 통해 유비적으로 포착한 시인의 탁월함에 의한 것이면서 동시에 시인에게 요구되는 윤리이기도 하다. ‘저기’를 통해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저기’를 향해 ‘여기’를 사는 것. 강경주 시인은 ‘시간’을 통해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함께, 인간의 삶은 무엇인가 또는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에 해명하기 위해 시를 쓴다. 끝내 해명되지‘는’ 않을 문제지만, 그 끈질긴 노력에 미학적 힘이 점차 응축될 것이다. 그와 같은 미학적 인간을 우리는 시인이라 부른다.
-김남규, '노모의 설법' 해설 평론가, 시조시인 2015.04
-강경주 시인의 작품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그의 작품이 현대시조만이 아니라 자유시를 포함한 현대시의
세태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삶의 방식은 이제 전면적인 도시화와 무관할 수 없으며, 도시적 일상이 생성해 내는 편리함과 반복성, 그 안에서 실천되는 개인의 자유와 긴밀하게 접합되어 있다. 이와 같은 삶의 지배적 구조 속에서 우리가 상실한 것은 무엇인가? 편리함을 추구하는 막강한 실용주의적 이념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품격과 정신주의의 추구라 할 수 있다. 현대시의 양상도 이와 같은 삶의 세태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하기 어렵다. 강경주는 우리가 결핍한 이 모두를 작품을 통해 내비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현대의 일상인들이 앓고 있는 왜소증을 벗어나, 강인한 정신의 기개가 돋보이는 작품을 구사한다.
경남시조문학상심사평 엄경희(문학평론가,숭실대 교수) : 2011.10.
-시조시인 강경주가 삶과 죽음의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의식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철학적이기도 하고, 종교적이기도 하고, 또한 시적이기도 하다. 철학에서는 이를 한계상황에 처한 인간의 실존이라고 하며, 종교에선 일쑤 구원과 영성(靈性)의 개념을 가리킨다. 물론 시적인 관점에서라면 그 문제는 삶의 진실을 표상하는 언어 표현의 문제가 될 것이다. 시인은 언어로 사유하고 언어로 삶을 표현하고, 완성한다.
작품 세계를 살펴 볼 때 그는 정신주의에 밀착해 있단 느낌을 주는 시인이다. 그의 작품은 선적인 취향의 것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때로는 눈부신 명상의 순간성이 담겨 있기도 하다. 그의 시가 지니고 있는 변별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경남문학집중조명 -강경주의작품세계 송희복(문학평론가, 진주교대 교수) : 2011.03.
- 강경주 시인의 작품은 쉽고도 재미있게 읽힌다. 이는 현대시조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방향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적지않은 의미를 지닌다. 시조는 지나친 두 극단의 관행을 누적적, 반복적으로 잘못해온 점이 없지 않다. 섣부른 관념성과 육화되지 않은 진지성이 그것이다. '참 먼길 오셨습니다/수고하셨습니다.'-열매 전문. 이 작품을 보면서 나는 한 방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군더더기가 없는 이 짧은 작품에는 시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많은 내용들이 숨겨져 있다.
이지엽(시인, 경희대 교수) : 2009.01.
- 강경주의 시들은 늘 끊임없는 노력과 체험, 그리고 잘 의도된 이미지의 배치 혹은 언듯언듯 보이는 혜안이 살리고 있다고 느껴진다. 아무튼 그는 아직 비밀에 싸인 시인이다.
이우걸 (시조시인) : 1987.09.
- 시인 강경주, 그는 시 역량에 비해 그의 이름이 세상에 덜 알려진 사람이다. 중앙에서 활동하지 않고 지방에 묻혀 살기 때문일까. 아니면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성품 때문일까. 나는 암만해도 후자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강경주 시인을 잘 알지 못하고는 아픔과 고통이라든지 죄의식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으리라. 그는 누구보다도 올곧게 사는 사람이다. 혼탁한 세상 물정에 동화되길 단호히 거부한다. 그러면서도 알게 모르게 자기의 인간성이 허물어져가고 있음을 의식하고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이문형 (시조시인) : 1999.05.
- 강경주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은 존재를 구속하는 일체의 것들에 대한 지움이고 버림이다. 그는 끊임없이 세속에서 들끓고 있는 욕망을 비워 내려고 한다. 그 지움 혹은 버림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면 이름이나 언어 따위의 기호의 실존학조차도 없게 될 것이다. 그 없음의 자리는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까. 궁극의 무 혹은 절대의 자유? 나는 그의 시조 속에서 하늘을 향해 솟구쳐오르려는 그 모반과 전복의 날개짓 소리를 듣는다.
장석주(시인, 문학평론가) : 199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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